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보당 사건 (문단 편집) === 조봉암에 대한 김일성 발언이 기록된 구소련 외교문서 발견 === 2020년 국민대 유라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인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박사가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연방 국가문서보관소에서 구소련 외교문서를 발견했다. 이 문서에는 1968년 9월 12~13일 북한을 방문한 드미트리 폴랸스키(Дмитрий С. Полянский)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겸 내각 부의장이 [[김일성]]과 나눈 얘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조봉암은 [[진보당(1956년)|진보당]] 설립에 대해 북한 쪽에 편지를 보내 '해당 임무를 달라'고 요청했으며 [[김일성]]은 '정치국에서 토론한 결과 다른 동지들을 통하여 그(조봉암)에게 연결체가 될 수 있는 합법 정당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고 소련 측에 주장하였다. 또한 [[김일성]]은 조봉암의 대선 출마에 대해서도 '조봉암은 이승만에 맞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조봉암)는 우리의 조언을 부탁했다. 우리는 그(조봉암)가 [[이승만]] 정권의 장관이라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하였다. 조봉암의 대선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대선 한두 달 지나서 어쩌면 그 이전에 미국은 우리가 조봉암에게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하여 북한에서 조봉암의 대선자금을 지원했다고 하였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5/2020051503838.html|관련 기사]] 다만 해당 소련의 기밀 문서 전수 조사를 비롯해 사실성 여부 및 그에 대한 검증은 계속 연구가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된 김일성의 발언과 달리 조봉암의 3대 대선 출마(1956년 5월)와 진보당의 창당(1956년 11월) 간 간격이 존재하는 점[* 진보당 창당위는 1956년 1월에 성립했지만, 당 창당이 이뤄지지 않고 조봉암은 3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조봉암과 이승만의 득표수가 김일성의 발언과 다른 점[* 1968년 김일성의 발언으로는 조봉암이 280만표, 이승만이 300만표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선거결과는 조봉암 216만표, 이승만 504만표였다.], 조봉암이 총살됐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교수형당했다는 점도 있다. 무엇보다 해당 문건은 '''김일성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것으로 이를 뒷받침하거나 교차검증이 가능한 물증 혹은 다른 연구는 밝혀진 적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일성의 "미국은 우리가 조봉암에게 선거운동을 위해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매우 낮다. [[미국 국무부]]의 기밀해제 문건은 미국이 조봉암이 처형되기 직전까지 이승만 정부 측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더글러스 딜런은 조봉암에 대한 사형선고를 두고 '정치적 살인'이라는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5/2020051503825.html|#]]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보에 보낸 보고서에도 "대사관은 조봉암에 대한 증거들은 조작된 것들이고 체포와 보도된 자백은 진보당에 대한 행정부의 불신에 근거한 것으로 믿어진다"고 서술되어 있다.[* Joint Weeka, no. 3 (1958. 1. 16). -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김일성의 위와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해당 문건을 발견한 째르치스키 박사도 '''소련 측에 자신의 한반도 내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뻥튀기가 김일성의 발언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조봉암이 북한의 조언을 구해 대선에 출마했고, 진보당을 설립했다는 김일성의 주장이 과장되거나 진실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문건 발견자가 밝힌 것이다. 따라서 소련 문건에 대한 향후 연구가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째르치즈스키 박사(한국 이름: 이휘성)는 위 주장과 관련된 사료로써 '조선대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조봉암 설명글'과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책 1982년)에서 조봉암이 김일성에서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의 글' 및 '노동신문(1970년 11월 3일)의 진보당 사건에 관하여 언급된 글'을 소개한 바 있다. 해당 [[https://www.dailynk.com/20201103-3/|기고글]]에 자세히 설명되있으니 참고할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